From 켄턴 C. 앤더슨(Kenton C. Anderson), Preaching Magazine
박사학위(PhD)를 받은 지 몇 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한 친구가 다가와 나와 함께 졸업한 동료에게 “무릎 통증이 있는데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내 동료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식당 테이블 위에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 들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자고 친구에게 바지단을 걷어 올리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무도 치료할 수 없는 종류의 박사가 되었구나”라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또 다른 재치 있는 친구는 PhD가 사실은 ‘Permanent Head Damage(영구적인 머리 손상)’의 약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끔은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설교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박사학위(PhD)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또한 누군가를 돕기 위해 반드시 의학박사 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설교자는 다른 종류의 치유자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 역사 속에서 설교자와 목회자는 종종 “큐레이트(curate)”, 곧 영혼을 돌보는 사람으로 불려 왔다. 오늘날에도 영혼을 돌보고 치유하는 일(soul curation) 은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사역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는 복음이 단순히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깊은 영혼의 상처와 질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복음은 영혼을 위한 치유의 연고와 같으며, 인간 내면의 고통과 상처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다. 설교자가 사용하는 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 질병을 치유하기에 충분한 처방이며, 때로는 육체적 고통과 삶의 문제를 이겨낼 힘까지 제공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단순한 강연자나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처방을 통해 상한 영혼을 돌보고 치유하는 영적 의사라고 할 수 있다.
설교자는 영적 의사로서 치유 과정에서 여러 역할을 감당한다. 그 역할은 크게 예방적(preventative), 진단적(diagnostic), 치료적(curative)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예방의 측면에서 설교는 성도들이 죄의 유혹과 영적 타락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경고와 권면을 전함으로써 성도들이 영적 질병에 걸리기 전에 그것을 피하도록 돕는다. 이런 의미에서 설교자는 사회의 건강을 위해 위험을 경고하는 공중보건 책임자(Surgeon General)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방적 설교는 무엇보다 성경에 대한 충실한 주해와 가르침을 필요로 한다. 설교자는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전달함으로써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도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규칙집이 아니라 인간이 가장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는 지침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말씀의 원리와 가르침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속에서 바르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예방적 설교의 목적은 단순히 죄를 경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성도들을 인도하는 데 있다.
진단의 역할에서 설교자는 성도들과 교회가 자신들을 괴롭히고 있는 죄의 실체를 깨닫도록 돕는다. 이러한 설교는 죄가 어떻게 인간의 삶을 무너뜨리고 영혼을 병들게 하는지를 드러내며, 우리 안에 있는 죄성과 자기중심성이 어떻게 건강한 삶과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진단적 설교는 성령의 책망 사역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설교자는 성도들이 자신의 죄를 직면하도록 돕고, 죄의 무게와 심각성을 깨닫게 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인식하도록 인도한다. 이 과정에서 성도들은 일시적으로 불편함이나 아픔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병을 발견하기 위해 진단을 받는 과정과 같으며, 현재의 모습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은혜의 과정이다.
한편 치료의 역할에서 설교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성도들의 실제 필요에 적용하는 사역을 감당한다. 개인과 공동체가 안고 있는 상처와 아픔, 실패와 죄책감, 두려움과 절망의 문제 위에 복음의 치유 능력을 선포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설교는 진정한 의미의 복된 소식(Good News)이 된다. 복음은 매 주일 예배당에 모인 상한 마음과 지친 영혼, 그리고 깨어진 삶 가운데 역사하며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 소망과 새 생명을 선포한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처방을 통해 죄로 병든 영혼을 치유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영적 치료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언제나 육체의 질병이나 연약함을 즉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삶의 모든 고통을 피할 수도 없다. 여러 해 전 기독교 심리학자 래리 크랩(Larry Crabb)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픔을 안고 설교자에게 찾아와 “빨리 나아지게 해 달라(feel better fast)”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훌륭한 의사의 치료가 항상 빠르고 고통 없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치료 과정이 질병 자체보다 더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고통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좋은 의사들은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전하는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 진리를 보여 주셨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참된 구원과 회복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내 가장 친한 친구들 가운데는 의사들이 여럿 있다. 나는 그들의 인내와 학문적 노력, 통찰력과 지혜에 늘 감탄한다. 한 친구는 자신이 맡은 환자의 병을 치료하지 못해 깊은 좌절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의 거실에는 의학 저널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그는 치료법을 찾기 위해 밤마다 그것들을 연구했다. 그는 육체의 치유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궁극적인 치유는 수술이나 약물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에 달려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설교자의 사명이 더욱 분명해진다. 의사가 육체의 건강을 위해 헌신하듯, 설교자는 영혼의 치유를 위해 부름받은 사람이다. 육체의 병을 치료하는 일도 귀하지만, 영원한 생명과 영혼의 회복을 다루는 사역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처방을 통해 사람들을 궁극적인 치유자이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영적 의사라 할 수 있다.
설교자인 영적 의사는 궁극적으로 가장 위대한 치료제가 부활임을 알고 있다. 부활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탄식과 고통에 대한 완전하고 최종적인 치유이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만 구원을 이루신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다. 그분의 부활은 죄와 죽음의 저주를 뒤집고, 쇠약해져 가는 우리의 육체를 새롭게 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단순히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일시적인 위로를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부활의 소망을 선포하는 사람이다. 복음은 우리의 상처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지만, 그것에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장차 이루어질 완전한 회복을 바라보게 한다. 이 소망은 결코 사라지거나 쇠하지 않는 영원한 소망이다.
언젠가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질병과 노쇠함에 시달리지 않는 새롭고 온전한 몸을 입게 될 것이다. 영원에 합당한 몸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곳에는 더 이상 의사가 필요 없고, 심지어 영혼의 의사인 설교자도 필요 없을 것이다. 모든 질병과 고통이 끝나고, 궁극적인 치유자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설교자의 사역은 단순히 현재를 위한 사역이 아니다. 설교자는 말씀을 통해 사람들을 부활의 소망으로 인도하며,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는 사람이다. 설교자가 전하는 가장 강력한 처방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며, 그 안에서만 인간은 참된 치유와 영원한 생명을 발견할 수 있다.